하나님의 생기가 없으면 공간과 다름이 없는 인간이 순간순간 주(主)의 뜻을 따르는 계명의 달인이 되는 것이 진정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사람의 99퍼센트는 수소, 산소, 탄소로 이루어져 있고 한 사람(70킬로그램) 속에 있는 원자의 수는 7x 1027이다. 7,000,000,000,000,000,000,000,000,000
매년 인간의 99퍼센트의 원자가 새롭게 대체된다. 그러나 원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질이기보다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0킬로그램의 사람을 압축시킬 수 있다면 눈에 안 보이는 먼지가 되며 저울에 달아 보면 그 먼지의 무게도 70킬로그램일 것이다. 역시 사람도 공간이다. 따라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먼지와 같다. 사실 우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주를 space(허공)라고 하지 않는가?
“보라 그[하나님]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이사야 40장15절). 없는 것과 같은 먼지 덩어리(원자 덩어리)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셔서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창세기 2장 7절).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가 없다면 없는존재인 것이다. 이 깨달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첫걸음이다. 없는 것과 같은 존재가 있게 된 이 사실을 알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는 것이 영원을 사모하는 참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영원을 사모하는 모습이 다양하다. 어떤 부류의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시니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거나 형편대로 따른다.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은 심판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계명을 지키려 하나 항상 달아 보니 부족하여 괴롭고 어두운 삶을 살 뿐 아니라 남도 힘들게 한다.
성경 마태복음 25장 33~46절에 나오는 염소와 양의 차이는 무엇인가? 효도, 선행, 선교라는 말들은 효와 선이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염소와 양의 차이는 행위의 차이가 아니라 의식의 차이이다. 염소는 의식적으로, 인위적으로 생색을 내며 선행을 하는 사람들을 표상하고,양은 그 삶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선행이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위(無爲)적인 사람들을 나타낸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것이다.
반면에 염소는 본인의 선행을 의식하며 그 영광을 스스로가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 일’을 한다. 인위(人爲)적인 삶이다. 기부금을 내더라도 표시 나게 하며 선교하러 갈 때에도 떠들썩하게 간다. 5명이 모인 곳에서 연주하기는 거부하더라도 500명이 모인 곳에서는 공연할 시간을 만든다. 대도시에서의 목회 자리는 승진이고 시골 구석의 목회는 좌천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래도 염소가 늑대보다는 낫지 않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염소는 여전히 양이 아니며, 하나님의 왕국은 양만의 것이다. 떠들썩하게 주여! 주여! 하는 염소들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장 23절).
어떤 분야에서 전문인이 되려면 10,000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과학적인 연구 발표로 알려졌다. 1990년대에 심리학자 Anders Ericsson과 그의 동료들은 Berlin 음대 교수들의 도움으로 바이올리니스트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연구를 했다.
첫 번째 그룹은 세계 수준급의 일류 연주자들이었고, 두 번째 그룹은 좋은 연주자들로 이루어졌고, 세 번째 그룹은 평범한 연주자들로 고등학교 교사 지원자들이었다. 세 그룹 모두 바이올린을 시작한 나이는 5세로 비슷했으나 연습 시간에 현저한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8세까지는 세 그룹 모두 일주일에 2, 3시간을연습했다. 그런데 일류 연주자들은 9세부터 일주일에 6시간씩, 12세에는 일주일에8시간, 14세에는 일주일에 16시간, 20세가됐을 때에는 일주일에 30시간씩 연주에 몰두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리하여 세계 정상에 올랐을 때에는10,000시간이 채워졌다. 반면에 좋은 연주자들은 8,000시간, 평범한 연주자들은 4,000시간을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Ericsson과 동료들은 피아노 연주자도 같은 결과였음을 확인했다. 10,000시간은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을 투자한 기간이다. 주말을 빼면 하루에 5시간씩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것이다.
모차르트의 첫 대작 No. 9, K. 271 교향곡도 그가 21세 때 완성한 것으로 그가정식으로 작곡한 지 10년 만에 이루어 낸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두각을 나타
낸 것이 다를 뿐, 음악의 천재도 10,000시간의 연습과 투자를 피해 가지 못했다.10,000시간의 법칙은 어떤 분야에서도 적용이 된다. 도(道)가 트는 것이다. 도가 튼다는 말은 길이 생긴다는 표현인데, 과학적으로는 두뇌 신경세포에 뿌리 수억 개가 생겨 두뇌 속에 길이 만들어진다. 한분야에 10,000시간을 투자하면 수십 조의 뿌리가 생겨 그 분야의 달인이 되는 것이다(그림 참고).
생활의 달인이라는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인 프로그램이 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일 14시간 이상 20,000개의 봉투를20여 년 동안 접어 자녀를 교육시키고 아파트도 마련하고 차도 산 봉투 접기 생활의 달인은 기계보다 더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단순 노동이지만 매우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가족 사랑 때문에 힘든지 모르고 10여 년 동안 봉투 접기를 즐거이 한 어머니가 진정한 생활의 달인으로 소개된 바 있다. 가족 사랑 때문에 봉투 접기
의 달인이 된 엄마, 10,000시간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기왓장을 쌓기 위해 정확한 양의 진흙을 만드는 달인, 자전거를 타고 정확하게 현관에 던지는 신문 배달의 달인, 타이어를 굴려 정확한 장소에 던지는 달인 등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서 한 분야에 몰두한 사람들이다. 그 모습이 어느덧 10년이 되면10,000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현실적으로10,000시간을 한 분야에 할애한다는 것은 평생토록 그것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것과 마찬가지이다. 비로소 생활의 달인이되는 것이다. 생활의 달인을 생각하며 계명의 달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흔히,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상반되는 율법주의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보다 율법 지키는 것이 주(主)가 되고 의(義)가 되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律法主義)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계명을 순종하느냐이다. 계명의 달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이 좋아서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식을 하지 못하고 평생토록 생활화하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양(羊)과 같은 사람이다. 다음 성경절들은 계명의 달인의 모습을 생생히 말해 준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 14장 12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 37~40절).
선행, 선교, 효도, 사랑의 삶을 살되 생색을 내거나 의식하지 말자. 하나님의 생기가 없으면 공간과 다름이 없는 인간이 순간순간 주(主)의 뜻을 따르는 계명의 달인이 되는 것이 진정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