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을 발견하면서 불면증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지구의 자전에 의한 천연적인 어두움과 빛, 밤과 낮을 통해 24시간의 주기를 지켜 왔다. 어두워지면 멜라토닌의 분비가 시작되면서 성장 호르몬의 기능도 활발해진다. 멜라토닌은 모든 세포의 수리를 도모하는 시작 신호이다. 또한 성장 호르몬은 청소년에게는 성장을 유도하지만 어른에게는 재생과 회춘을 촉진시킨다. 어두움에 의해 시작되는 세포의 재생은 조그만 인위적인(인공) 불빛에 의해서도 억제된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치유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 치유의 현상이 바로 수면(睡眠)이다.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불면증, 그 정체를 통해 영육 간의 깨달음과 영육 간의 쉼을 얻어 보자.
인간의 건강은 잠을 재우는 호르몬과 잠을 깨우는 호르몬의 균형에 의해 이루어진다(그림 참고). 잠을 재우는 호르몬은 세로토닌, 멜라토닌, 성장 호르몬
이 대표적이고, 잠을 깨우는 호르몬은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코르티솔이 대표적이다 또한 오렉신(Orexin)이라는 깨움의 지휘자 호르몬도 있다. 잠을 재우는 호르몬과 잠을 깨우는 호르몬이 균형지게 분비될 수 있는 절제의 삶을 살아야만 불면증을 극복할 수 있다.
어두워지면 멜라토닌의 분비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잠에 빠진다. 약 1시간 후, 멜라토닌의 활발한 분비에 의해 손상된 유전자의 수리가 시작되고 성장 호르몬의 재생과 회춘의 기능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멜라토닌은 두뇌 속에서 분비되는 안정감을 주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충분한 세로토닌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충분한 세로토닌은 어떻게 분비되는가? 세로토닌은 눈을 통해 빛을 보았을 때 활발하게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약으로 만들어 복용하면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세로토닌은 그 구조 때문에 소화 기관을 통해 혈액으로 흡수되어도 두뇌 세포 속까지는흡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두뇌 세포 속으로 흡수되는 세로토닌 원료를 음식에서 섭취해야 한다. 그 원료는 트립토판(tryptophan : 대두, 다양한 콩류, 호박씨, 해바라기씨, 견과류에 듬뿍 함유되어 있다.)이라는 아미노산이다. 음식은 원료를 제공해 세로토닌을 만들게 하고 빛은 만들어진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하는 역할을 한
다. 그 빛은 낮 동안 45분 정도의 햇빛을 통해 만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밤에 불을 켜 놓는 것은 오히려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 낮에는 빛을 보아야 하고 밤에는 어두움 속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기억하자. 인위적인 빛(전깃불)은 잠이 들어야 가능한 멜라토닌 분비 시간을 지연시킨다. 예를 들어 해상도가 가로 1,920 x 세로 1,200인 컴퓨터화면은 2,304,000개의 ‘전구’ pixel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인공 불빛을 바라보며 일하고 즐기느라고 밤늦도록, 혹은 밤새도록 쉼이 없다. 자연적 리듬을 거역한 불면의 시작이다. 밤에 컴퓨터 앞에 있는 모든 인간의 조용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도파민은 쾌감 호르몬인 동시에 의미의 호르몬이다. 인생을 신나게 하는 호르몬이다. 밤에 신나는 일을 하거나 영화를 보게 되면 한동안 잠을 이루기 힘들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집중력을 증가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호르몬이다. 낮에 일할 때는 꼭 필요하나 밤에 쉬어야 할 때 분비되면 정신이 말짱해져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운동은 노르-아드레날린을 활발히 분비시키기 때문에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취침 시간 2, 3시간 전에 운동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코르티솔은 아침과 오후에 단기적으로 증가하여 기운을 내는 역할을 하나 걱정, 근심이 지속될 때 그 수치가 높은 상태로 장기적으로 유지되면 멜라토닌의 기능을 억제하는 등세포를 파괴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잠이 들지도 않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낮과 밤이 바뀌거나 구분이 없어질 때 특별한 질병이나 두뇌 손상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불면증이나 피곤증에 시달리게 된다. 잠을 깨우는 호르몬들이 낮에 충분히 분비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인위적인 행함이 없이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못할 것이 없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노자 사상이 있다.
어두움, 저녁, 밤, 암흑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배우는 좋은 기회이다. 인간은 빛이 가리워지면 눈을 감게 되고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의식적으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나 무의식 속에서 모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인위(人爲)적인 모든 것을 그치고 무위(無爲)적으로 자연(自然)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다.
잠은 깊을수록 그 치유 효과가 더 강하다. 죽은 듯 잠을 자고 나면 얼마나 개운한가? 진정한 회복을 누렸기 때문이다. 자연(自然)이라는 말을 엄밀하게 따져 보면 스스로 그렇게 됨이라는 뜻인데, 히브리 말로 야훼(스스로 있는 자 : I AM)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자연은 천연계가 아니라 야훼(하나님)이다. 그렇다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야훼께 맡기면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어두움과 함께 찾아오는 잠은 바로 무위자연을 세포 속 깊이 체험하게 한다. 따라서 잠은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체험하게 하는 매우 좋은 기회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우리 모두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1절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생물학적으로 짐승은 보상 중심으로 살아간다. 동물원에서 재주를 부리는 짐승은 먹이라는 보상을 받으려고 일생을 노예로 산다. 사람도 돈이라는 보상을 얻으려고,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으려고 밤낮 쉼 없이 살아간다. 돈 버는 걱정,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걱정, 본인이 벌여 놓은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상황들은 짐승으로 꼴 지워지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나의 손을 놓고, 발을 멈추며, 눈을 감고 잠에 들어가는 평안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최고의 어려움일수록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잠에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짙은 암흑은 하나님의 치유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